남관왕묘는 원래 중구 남대문로5가 530번지에 위치했으나, 1899년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고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1957년 재건되었으나, 서울역전 도동지구 재개발에 따라 1979년 1월 사당동 180-1로 이전 건립되었으며, 원래 위치에는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초기에 세워진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기존 남관왕묘나 동관왕묘와는 다른 성격을 띤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충주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 민비는 그곳에서 관우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무녀(巫女) 이성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차후 한양으로 복권한 민비는 환궁 시기를 얼추 맞춘 무녀 이씨를 한양으로 불러들여 진령군(眞靈君)에 봉하고 종로구 명륜동에 당집을 마련해 주었고 그것이 바로 북묘였다.

 

숭의묘(崇義廟)라고 불리는 서묘(西廟)의 기원에 대해서 고종의 계비 엄귀비가 세웠다는 설과 고종이 주도했다는 설 등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엄귀비가 세웠다는 설은 민비가 북묘를 세웠다는 설과 유사한데, 관우 귀신에 씌었다고 주장한 현령군(賢靈君) 무녀(巫女) 윤성녀가 관성제군(關聖帝君)의 이름으로 엄귀비를 움직여 세웠다는 것이다.

 

고종 주도설을 제시하는 측에서는 엄귀비에게 국가 향사를 좌우할 힘이 없었으며,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장충단(奬忠壇)과 숭의묘(崇義廟) 등을 통해 ‘충의(忠義)’를 강조하고 국란을 해결하고자 하는 고종의 계책이었다고 설명한다.

 

1883년 세워진 북관왕묘(종로구 명륜1가)와 1902년 세워진 서관왕묘(서대문구 천연동 98번지)는 각각 1908년, 1909년 동묘와 합사하면서 사라졌는데, 현판과 비는 국립중앙발물관과 동묘에 나뉘어 보관, 전시되었고 모시던 각종 상들은 현재 동묘의 정전 내부에 모셔졌다.

 

 

민간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관왕묘로는 엄귀비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중구 장충동의 관성묘(장충동 2가 186-140번지)와 임진왜란 직후 민간인에 의해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역시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한 중구 방산동의 성제묘(방산동 4-96번지), 종로구 보신각 뒤편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중묘(中廟) 등이 있다.

 

장충동의 관성묘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풍판이 없어서 5량식 구조의 짜임이 잘 드러나며 건물 안 정면에는 관우상과 부인상이 걸려 있고, 좌측 벽과 우측 벽에는 문인상과 무인상 그림이 걸려있다. 이 관성묘에서는 일면에 네 차례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방산동의 성제묘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건물 안 정면에는 관우 부부상이 화려한 닫집 안에 걸려 있는데, 관우 머리 위에는 붉은색의 해가 그려져 있고 부인의 머리 위에는 흰색의 달이 그려져 있으며, 좌측 벽과 우측 벽에는 무속화가 걸려 있다.

 

명륜동에 있던 관성묘(명륜3가 51)는 한때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1991년 구조 변경으로 가치 상실되었음을 이유로 지정이 해제되었고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며, 종로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중묘(中廟) 역시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

 

서울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를 따라가다 보면 '와룡묘(臥龍廟)'를 만날 수 있다.

 

장충동의 관성묘와 더불어 엄귀비가 세웠다는 설이 있는 중구 예장동의 와룡묘는 중국 촉나라의 제상으로 유명한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이다.

 

1924년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1934년 중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사당은 제갈공명과 관우를 모신 와룡묘와 더불어 단군성전, 제석전, 약사전, 삼성각, 문신각, 요사 등이 있으며 도교 신령과 더불어 한반도 전통의 토속신앙 및 무속신앙이 결합한 민속신앙적 요소가 강한 사당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605년(선조 38년)에 평안도 영유현에 와룡묘를 짓게 하였고, 그 후부터 왕들이 관원을 보내어 제를 올리거나 제문(祭文)을 지어 보낸 예도 있으니 와룡묘가 낯선 것은 아니지만, 관제신앙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돋운다.

 

이처럼 국내는 일부 도교 계열이나 일부 민속 신앙 등에서 관제를 신으로 모시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중화 문화권에서 관우는 무신(武神)으로 또한 재신(財神)으로 널리 추앙받는다.

 

관왕묘의 다른 이름인 무묘(武廟)가 공자를 모시는 문묘(文廟)의 대척점이라는 것에서부터 중화 문화권에서 관우의 입지를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무신으로 추앙받던 관우가 재신으로 변모한 시기는 대략 청나라 중엽이라고 한다.

 

관우의 고향인 산서(山西) 지방 상인들인 진상(晉商; 춘추전국시대 진나라땅 상인이라는 뜻)과 섬상(陝商)은 명나라 초기 군량 보급, 특히 소금 판매권을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청나라 초기에는 청나라에 대한 재정지원의 반대급부로 상업특권을 얻어 크게 성장했다.

 

그들은 동향 인들의 인적 교류 및 공동의 상업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산서회관(山西會館) 또는 산섬회관(山陝會館)을 중국 각지에 세우면서 관묘를 설치하고 수호신(향토신 및 재신)으로 섬겼는데, 이후 그들의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관우는 중국인들에게 재신으로 숭배받게 되었다고 한다.

 

 

산서상인들이 관우를 재신으로 모신 배경에는 관우가 돈 관리에 철저하고 회계에 능통했다는 설과 관우로 대변되는 충의(忠義)와 신용(信用)의 이미지, 죽어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설 등에 기반한다.

 

이 외에도 관우가 재신으로 모셔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관우가 조조의 호의를 뒤로하고 의형인 유비에게 돌아갈 때 보였던 재물에 담백한 모습 때문이라는 설에서부터 형주를 다스리게 된 관우가 동향인 산서 출신의 왕삼(王三)에게 장사밑천을 대주고 나쁜 짓을 하던 이광조(李光祖) 일당도 계략으로 모두 처리하자 감복한 왕삼이 관우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양조비법을 공개했고 큰돈을 번 양조상인들이 관우의 초상을 걸고 사업의 번창을 빌던 것이 퍼져 모든 상인의 재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관우의 고향인 산서성 해주 사람들이 가뭄이 들때 염신인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소금을 밀매하던 사염상(私鹽商)들이 관우를 수호신처럼 사용하던 것이 퍼져 재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현재 중화 문화권에서 관우는 무신보다는 재신 중 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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