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은 백범의 발자취 下

건국실천원양성소

 

 

해방 후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은 국권침탈 전 그러했던 것처럼 계몽운동과 교육 사업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1947년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2가 73에 있던 원효사를 본부로 하여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김구의 자주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임시정부가 1940년 9월 충칭(重慶)에서 제정, 공포한 <대한민국건국강령>을 기초로 하였다.

 

건국강령 제2장 복국(復國)의 단계에서 광복군(光復軍)이 필요했던 것처럼, 제3장 건국(建國)의 단계에서는 건국의 동량이 필요했고, 이 필요에 의하여 1947년 3월 이 양성소가 설립된 것이다.

 

건국실천원양성소는 명예소장 이승만(李承晩), 소장 김구로 출발하였으며 전국 각지의 우수한 애국청년들을 선발하여 건국운동의 중견 일꾼으로 양성하고자 교육을 했는데, 이런 인재 양성의 발상은 청년들이 국가를 건설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김구 개인의 신념에서 나왔다.

 

양성소의 매기 교육 인원은 100명 내외로 교육기간은 제1기가 2개월이었고, 제2기부터 마지막 교육을 받은 제9기까지는 1개월로 1947년부터 1949년 해체될 때까지 약 2년 동안 모두 9기에 걸쳐 약 800여 명의 입소생을 교육했다.

 

교육내용은 독립운동사·정치·경제·법률·헌법·역사·선전·민족문화·국민운동·철학·약소민족문제·농촌문제·협동조합·사회학·공산주의 비판·여성문제 등과 특별강의로 강사는 각계의 인사들이 담당했다.

 

1949년 6월 김구 서거 이후 8월 건국실천원양성소는 해산하였고, 홍익대학교에서 본부인 원효사의 교사를 인수하여 미술과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최근까지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으나 2019년에 용산구에서 건군실천원양성소터 인근 보도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김구주택과 백범학원

 

 

건국실천양성소가 건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면 백범학원과 창암학원은 전재민(戰災民) 아이들의 기초 교육을 위한 공민학교 대체 개념의 학원이었다.

 

1948년 우익의 분열과 이승만과의 결별 등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암살사건 배후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는 등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김구는 1948년 연말에 서울 시내 각처를 순례하며 집 없이 굶주림에 떨고 있는 빈궁한 동포들에게 총 90만 원을 희사하였고, 이 희사금은 염리동, 이촌동, 금호동, 숭인동, 청계천, 장충단 등에 나누어 전달되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이 희사금은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유해환국 봉안식에 들어온 부의금과 아들 김신의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였는데, 백범은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중간에 서서 나를 사랑해 주는 여러 친구의 심부름을 한 것뿐”이라고 전했다.

 

이 중 금호사거리~금남시장 일대에 1948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600가구가량의 전재민부락에 전달된 25만 원은 일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던 전재민 아동 교육을 위한 학원 건립에 사용되었다.

 

1949년 1월 27일 개원한 이 학원은 김구의 호를 따 ‘백범학원’이라 칭해졌으며, 이런 뜻을 기리기 위해 일대의 전재민주택을 김구주택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호동이 소재한 성동구에서는 지난 2013년 이런 사실을 발굴, 복원하여 백범학원과 김구주택이 소재했던 일대의 중심인 금남시장 교차로 교통분리섬에 백범학원 기념비를 건립해 그 뜻을 기리게 되었다.

 

백범학원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 건물터를 가리키는 사진 한 장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장 및 자료 조사를 실시해 현재의 금호동 4가 548-1번지에 백범학원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아직도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데 금남시장 측의 일부 주택과 골목에서는 아직도 당시 김구주택의 일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창암학원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의 창암학원의 건립 과정은 금호동 백범학원과 유사한 점이 많다.

 

김구의 희사금 25만 원을 전달받은 염리동 천막촌의 이재민들도 금호동 이재민들을 본받아 아이들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막 공민학교를 건립하고, 김구의 아명(兒名)인 창암을 딴 창암공민학교를 1949년 3월 14일 개원했다.

 

김구 본인도 자신의 아명을 딴 창암학원을 유달리 총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같은 해 5월에는 시가 5만 원 가량의 유리와 건축 재료들을 기증했고, 1명의 교원 파견 및 급료 부담을 지기도 했으며,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당일에도 창암학원 교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리동의 창암학원은 한국전쟁때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사료가 부족하여 확인할 길이 없으나, 1955년 3월 개원한 서울여자중학교(당시 마포여자중학교) 부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범광장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백범광장이 남산 자락인 중구 회현동1가 100-115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원래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神社)가 세워졌던 곳으로, 1956년 8월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으나 1960년 4·19혁명 이후 철거되었고, 1969년 8월 현재의 김구 동상이 세워지면서 광장의 이름 역시 백범광장이 되었다.

 

인근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히는 백범광장은 김구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독재정권과 4·19혁명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돌이켜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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